🎡 두리랜드: 배우 임채무의 33년 꿈과 헌신, 아이들을 위한 테마파크 완전 정복!
어린이들의 웃음꽃이 피어나는 곳, 그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뚝심과 사랑으로 지어진 꿈의 동산, 두리랜드의 시작
1973년, 경기도 양주의 한 계곡에서 무명 배우였던 임채무 씨는 위험하게 노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 아파합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야겠다!”라는 굳은 다짐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두리랜드’의 씨앗이 됩니다. 그리고 1990년 5월 1일, 마침내 그 꿈의 결실이 양주 장흥면에 문을 열었죠. 처음 1500평으로 시작한 두리랜드는 현재 1만 6000평 규모로 성장하며,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이 가득한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이 꿈의 동산을 만드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임채무 씨는 약 250억 원을 투자했고, 심지어 2020년에는 마지막 남은 서울 아파트까지 팔아 두리랜드 실내 테마파크 건설 자금으로 충당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약 150억 원의 은행 빚을 안고 있지만, 그는 “이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웃고 있어요. 눈을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해요. 그 웃음과 그 맛이 좋은데 어쩌겠어요”라며 아이들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임을 강조합니다. 개장 초기 18년간 입장료를 받지 않고 운영했던 것만 봐도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단순한 놀이공원 그 이상! 두리랜드의 현재와 임채무의 철학
2017년 잠시 휴장했다가 2020년 새롭게 문을 연 두리랜드는 이제 운영 유지를 위해 입장료를 받고 있습니다. 실내 테마파크로 리모델링하며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체험형 공간으로 거듭났지만, 재정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월 대출이자만 약 8천만 원, 고정 지출이 1억 2천만 원에 달하는 반면, 일평균 매출은 16만~32만 원 선으로 심각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죠. 그야말로 적자의 늪에서 피어나는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채무 씨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의 경영 철학은 “어린이 사업은 수익 사업이 아니라 사명감의 일환“입니다. 방송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직원들은 그를 ‘잔소리 폭격기’, ‘결벽증 있는 대표’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임채무 씨는 “나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원칙을 지킬 뿐이다”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새벽 1~2시에 일어나 두리랜드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놀이기구 안전을 직접 점검하며 “두리랜드에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뚝심과 부지런함이야말로 두리랜드를 33년간 지탱해온 힘일 것입니다.
✨ 미래를 향한 발걸음: 두리랜드의 변화와 사회적 메시지
두리랜드는 현재 복합문화센터로의 재개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놀이기구를 넘어, 생활안전체험관과 곤충·동물 생태 체험교육원 등을 포함해 교육적 가치와 체험 요소를 결합한 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입니다. 이는 단순한 놀이공원을 넘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공간이자, 민간이 주도하는 사회공헌형 테마파크의 대표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두리랜드는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주말 및 공휴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일입니다. 실내 놀이공간, 야외 수영장, 어린이 물놀이터, 회전목마, 바이킹, 범퍼카 등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을 위한 다채로운 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 나들이에 안성맞음입니다. 최근에는 GS건설 임직원 가족 행사 장소로 활용되며 그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죠.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젊음을 유지하는 임채무 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내가 없어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계속 남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아이들의 행복’이라는 가장 순수한 가치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두리랜드는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닌, 한 사람의 진심과 수많은 아이들의 웃음으로 채워진 살아있는 동화책입니다.
오늘, 소중한 가족과 함께 두리랜드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보는 건 어떠세요?